나는 사회초년생 무주택 1인 가구(인천 해당지역, 청약가점 20점)다. 현 주택청약 제도에서는 1인 가구의 청약 기회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청약 신청을 수십번을 넣어봐도 가점제와 추첨제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예비번호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에 영종도에 전용 84m2 아파트 입주자 모집 공고가 떠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신청을 넣어봤는데, 처음으로 예비번호를 받았다. 일반공급 70세대 모집에 예비번호 180번대였다.
예비 당첨이 처음이라 관련 정보를 알아보니 보통 미계약, 부적격 당첨자가 타입별로 모집 세대의 10~20% 정도가 나오기 때문에 20% 이내의 번호를 받지 못했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잔여세대가 나오더라도 계약을 안하는 이유가 당첨받은 동/호수가 저층이라던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비번호 받아도 앞 번호를 받은 소수의 예비 당첨자만 서류제출 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위치가 영종도라 그런지 타입별로 200번까지 연락이 와서 주말에 방문 예약을 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당첨자들의 정당계약이 1월 5일까지였고, 나는 7일에 예비당첨자 추첨을 위해 모델하우스에 다시 방문해야 했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6일에 몇세대 남았는지 전화해보니 알려줄수 없단다. 당일에 모델하우스에서 잔여세대 숫자와 동/호수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인터넷 화면 클릭 몇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주택청약 시스템은 왜이렇게 구시대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류제출도 모델하우스까지 청약자 본인이나 대리인이 직접 내방해야 하고(지방에 있는 아파트 당첨됐다면 직접 내려가서 제출해야함), 추첨도 온라인 추첨하면 될 것을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 바쁜데 아침부터 불러다 놓고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 그것도 평일에.
잔여세대 몇 세대 남았는지 알려주는게 어려운 일인가? 몇 세대 남았는지를 알아야 당첨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참석 여부를 정할 것 아닌가.
어쨌든 추첨일이 되어서 지정된 시간에 모델하우스에 입장했다. 입장할 때 이름과 예비순번을 알려주면 건설사에서 인적사항이 미리 인쇄되어 있는 '예비당첨자 추첨 신청서'를 준다.
서류를 받아들고 아무 자리에나 착석해서 추첨 시작을 기다리면 된다. 눈으로 대충 사람 수를 세보니 예비번호 200번까지 서류 제출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70명 남짓 추첨에 참석한 것으로 보였다.
입장 시간이 끝나면 추첨이 시작된다. 먼저 건설사 측에서 잔여세대가 몇 세대 인지 알려준다. "이 주택은 조정대상지역에서 분양하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이며.... 재당첨 제한은 몇년 이며... 잔여세대는 50세대 입니다." 그리고 잔여 동/호수의 배치도가 모니터에 떴다.
50세대? 일반공급 세대수가 70세대 였으니 당첨자 거의 대부분이 계약을 안한 셈이다. 공항철도 역세권도 아니고 가장 가까운 운서역까지 차로 20분 걸리는 거리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평면 조차 엄청 안좋았다. 아니 이럴거면 뭐하러 청약했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읺고 '선당첨 후고민' 하는 무지성 청약의 댓가로 계약 포기자들은 청약통장을 향후 몇년간 사용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게 됐다.
나는 당일 추첨 참가자의 가장 뒷 번호였고 그래서 추첨 참관인으로 호명됐다. 나는 180번대였는데, 너무 뒷 번호라 내 번호까지 차례가 올 가능성이 적다보니 추첨의 공정성을 위해 건설사측도 아니고, 추첨 참가자도 아닐 확률이 높은 나를 호명한 것 같다.
동/호수 추첨은 제비뽑기로 하는데 참관인은 모니터에 잔여 동/호수를 보면서 뽑을 제비에 적혀 있는 동/호수와 모니터에 나와있는 실제 동/호수가 일치하는지 갯수는 맞는지 하나씩 일일이 대조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추첨함이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인지 확인한 후 제비를 추첨함에 넣고 흔들어 섞었다.
나는 별도 마련된 좌석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고, 건설사에서 추첨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안내를 했다. 제비를 뽑고 나면 반드시 계약을 해야하고 청약통장 사용으로 간주되어 미계약 시 재당첨 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단다. 즉, 내가 만약 101동 101호를 뽑았다면 저층이라서 마음에 안든다던가 하는 이유로 계약을 안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불이익 없이 포기하려면 제비를 뽑기 전에 모니터를 확인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동/호수만 남았으면 아예 제비를 뽑지 않고 모델하우스에서 퇴장해야 한다. 제비를 뽑는 순간 청약통장 사용이다.
일반공급 70세대 중 50세대가 남았으니 잔여세대의 동/호수는 동별 층별로 고층부터 저층까지 다양하게 남아있었고, 예비번호는 160번대까지 돌아서 잔여세대 모두 완판 됐다. 역시 별로 기대도 안했지만 내 순번까지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모델하우스에서 퇴장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다가오는 4월에 지금 살고 있는 전세가 만기되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 더 전세집으로 이사를 가야할지...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분양권을 매수할지... 대출끼고 기존 아파트를 매수할지...
현금은 월급 열심히 모아서 학교 졸업하고 취업한지 4년 만에 현재 시세 5억~6억 하는 기존 아파트를 대출 끼고 매수할 수 있는 여력이 될 만큼 모였다. 고민이 깊어진다.
청약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영종도 마저 당첨이 안되고 잔여세대 예비당첨도 안된다면 수도권에서 청약으로는 내집마련 가능성이 없는게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2030 세대에게 청약하라는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인 것 같다. 이런 현실을 알까? 1인 가구는 청약에서 거의 배제 되어있고, 신혼부부마저 자녀 2명은 있어야 당첨이 되는게 현실이다.
청약 탈락이 반복되면서 분양가는 계속 올라 인천 부평 전용 59m2 아파트가 5억에 분양해도 완판되는 시대가 왔다. 청약따위 포기하고 P주고 분양권 사거나 기존 낡은 아파트 패닉바잉, 영끌하는 젊은 사람들이 절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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